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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박헌수입니다. 이번 달은 저의 실수와 이것을 통해 배운 점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과 경험을 해왔고, 그 과정 속에서 적지 않은 실수들도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 실수들은 당시엔 부끄럽고 피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제 삶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의 말실수, 가족에 대한 이해 부족,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제 인성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학업적 회피와 생활 습관의 불규칙함은 제 성장의 방향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제 삶에서 가장 뼈아팠던 다섯 가지 실수를 진솔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1. 말실수로 인한 관계의 상처와 후회
사람과의 관계는 말 한마디로 꽃피우기도 하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완전히 무너지기도 합니다. 저는 말실수로 인한 갈등을 자주 겪어왔습니다. 특히 누군가가 저에게 기분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저는 그 상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곧장 공격적으로 대응하곤 했습니다. 상처받은 제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거칠었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가까운 친구와의 다툼입니다.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이 저에게는 무례하게 느껴졌고, 저는 그 자리에서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문제의 핵심보다는 서로의 태도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고, 결국 서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 채 대화가 끝나버렸습니다. 당시의 저는 상처를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곧바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솔직함’이 아니라 ‘배려 없는 표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저는 대화를 할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감정을 조금 가라앉힌 후에 제 입장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을 아끼고, 상대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더 잘 해결하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 그 친구와 다시 대화할 기회는 오지 않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주어진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말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신뢰를 쌓아가는 연결고리임을 몸소 느꼈습니다.
2. 가족에게 상처를 준 경험
저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저를 키우셨고,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어릴 적 저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불만을 품는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등교했고, 방과 후 학원에 가거나 놀이터에서 뛰놀았지만 저는 늘 혼자였고, 늘 결핍을 느꼈습니다. 그 결핍의 원인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아주 유치한 방식으로 제 감정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엄마가 날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니까 내가 이 모양이지.”
이런 생각은 제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어떤 날은 어머니께 대놓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이 어머니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사랑의 결핍이 지속되고, 마음에 우울함과 불안으로 가득해셔 삶이 공허할 때 “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들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늘 사랑받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엄마의 사정과 노력에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회를 안고 대학에 진학했고, 혼자가 되어보며 어머니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출근길의 버스, 하루 두 끼를 때우는 식사, 남몰래 견디는 아픔, 이 모든 것들이 저를 위한 희생이었음을 알게 된 후, 저는 수없이 어머니께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그때 왜 더 일찍 이해하지 못했을까’라는 깊은 후회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늦은 밤, 문득 떠오르는 그 한마디에 제 자신이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엄마 때문이야.” 그 말은 철없던 제가 했던 가장 큰 실수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말 대신 “엄마 덕분이야”라는 말을 자주 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환경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견뎌낸 우리 가족이 자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회가 저를 바꿨고, 그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3. 이웃사랑의 실천 부재에 대한 미안함
‘사람은 결국 혼자다’라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말은 제게 일종의 방어기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정을 주는 일은 오히려 상처받을 확률이 높다고 여겼고, 그래서 타인에게 애써 다가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고, 가까워져봤자 언젠가 멀어질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가족도 아닌데’, ‘다시 볼 일도 없는데’라는 말로 제 무관심을 합리화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작스럽게 갈증이 심하게 났고, 마땅히 물을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근처에 있는 동네 떡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망설이다가 가게 문을 열었고,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저는 물 한 잔만 달라고 부탁드렸고, 할머니는 웃으며 물을 내어주셨습니다. 물을 다 마신 후 저는 인사를 하고 나가려 했는데, 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떡 하나 사줄 줄 알았더니 그냥 가네. 서운하다”
그 말이 참 오래 남았습니다. 당장은 아무렇지 않은 척 나왔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습니다. 할머니의 말에는 단순한 섭섭함이 아닌, 외로움이 담겨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작은 부탁 하나조차 무심하게 넘겨버렸고, 따뜻한 손길에는 아무런 답례도 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파안장학문화재단에서 받은 장학금도, 사회 복지 혜택도, 모두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랑을 다시 이웃에게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장학금을 받을 때는 기쁘면서도 늘 어딘가 미안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이제야 확실히 보입니다. 저는 그 사랑을 받기만 했지, 나누려는 마음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웃사랑은 선택이 아닌 책임이라는 것을 점점 배워가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스쳐가는 사람에게도 정을 베푸는 삶이 진짜 따뜻한 삶이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이웃은 비록 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작지만 꾸준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년 전부터 매월 5,000원이라는 작은 돈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봉사나 기부가 아니더라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진심을 담는 것이 저만의 이웃사랑 실천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 날, 떡집 할머니께 사드리지 못한 떡 한 조각이 제 안의 부채로 남아 평생 저를 움직이게 할 것 같습니다.
4. 어려운 공부를 회피한 후회
학문을 깊이 파고들수록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벽이 있습니다. 저에게 그 벽은 ‘영어 원서’였습니다. 인문학과 교육학이라는 전공 특성상, 해외 이론과 논문을 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교수님들은 늘 말했습니다. “원문으로 읽어야 진짜 의미를 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고도 모른 척했습니다.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 하나로 영어 공부를 뒤로 미뤘습니다.
사실 기회는 많았습니다. 대학생 때만 해도 시간이 비교적 넉넉했고, 다들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시기였습니다. 친구들이 토익 공부를 하거나 영어 원서를 조금씩 읽는 모습을 보며, 저도 마음을 먹긴 했습니다. 하지만 늘 ‘조금만 있다가 시작하지 뭐’, ‘당장 급한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넘겼습니다. 영어 단어장을 펴는 대신, 그 시간에 휴식을 택했고, 논문을 해석하는 대신 누군가의 요약본에 의존했습니다.
결국 그 대가는 대학원 진학 이후에 돌아왔습니다. 연구를 위해 외국 학자들의 원서를 읽어야 했고, 인용이나 분석을 위해 정확한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깊은 후회에 빠졌습니다. 왜 그때 시작하지 않았을까. 왜 눈앞의 불편함을 피하려고만 했을까. 결국은 돌아올 길이었고, 언젠가는 마주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다행히 늦게나마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찾으며 읽었고, 한 문장을 이해하는 데도 1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며 하나의 페이지, 한 권의 책을 넘길 때마다 제 안의 후회는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늦었다’는 자책은 ‘지금이라도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단순한 언어 공부 이상의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어려운 공부는 피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며,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되돌아온다는 것. 결국 학문이란 회피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후로는 새로운 개념이나 낯선 분야를 마주할 때마다, 과거처럼 돌아서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지금의 저는 어느 때보다도 주도적으로 공부에 임하고 있습니다. 도전 앞에서 망설였던 그 시절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지금의 제가 있게 한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후회를 자양분 삼아, 오늘도 낯선 영어의 첫 페이지를 당당히 펼쳐듭니다.
5. 규칙적인 생활과 공부 태도의 부재
공부에는 분명한 리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고, 머리가 맑은 시간에 사고하는 습관이 진짜 공부를 만든다는 걸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불규칙한 생활을 했습니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다가 새벽에 잠들고, 아침 수업은 눈을 비비며 겨우 출석 체크만 하고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집중력도 낮았고, 공부에 몰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사람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오늘은 꼭 집중하자’는 다짐을 매일 했지만, 생활이 엉켜 있으니 마음만 앞서고 성과는 없었습니다. 규칙적인 습관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원 진학 후였습니다. 한계를 느끼고 나서야, 제가 무너졌던 진짜 이유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해결 방법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단순한 것부터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단순히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이 자리 잡은 후에는 러닝, 자전거로 활동 반경을 넓혔습니다.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생활 리듬을 잡는 도구였고, 이를 통해 다시 책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 습관들이 하루를 분명히 나누어주었고, 자연스레 공부 시간도 정해졌습니다. 예전처럼 ‘공부해야 하는데’라는 죄책감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집중하고, 남은 시간엔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건 삶을 공부처럼 운영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규칙함 속에서 자신을 방치하면, 아무리 뛰어난 지식도 제대로 쓸 수 없습니다. 그건 이미 제가 경험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공부 계획을 짤 때, ‘공부 시간’뿐 아니라 ‘생활 리듬’까지 함께 설계합니다. 일정한 기상 시간, 아침 운동, 집중 시간대 파악, 휴식 루틴까지 모두 제 공부의 일부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은 어느새 저의 학습력을 끌어올리는 핵심 자원이 되었습니다. 공부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걸 저는 늦게 배웠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닌, 시간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실수일지라도, 그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경험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회를 통해 배웠고, 배움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바꾸어왔습니다. 말의 무게, 가족의 희생, 이웃의 존재, 공부의 자세, 그리고 생활의 리듬까지. 실수 하나하나가 제 삶에 중요한 의미로 새겨졌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 실수들을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후회가 아닌 성장으로 삶을 채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